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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변증가들이 신앙을 옹호함
기독교 변증가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 공헌한 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공헌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변증가들이란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와 같은 로마 황제들에게 기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던 2세기 기독교 저술가들이다.
『디오게네투스에게 보낸 서신』 외에도, 기독교 변증가들로는 아리스티데스(Aristides),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사르디스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아테네의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of Athens), 타티안(Tatian)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스(Theophilus of Antioch) 등이 있다. 비록 그들이 활동한 정확한 시기와 삶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들 모두는 2세기경 로마 제국 내에서 살았던 것 같다. 변증가들 중 일부는 감독도 있었고 평신도도 있었다. 또한 일부는 순교를 당하였고 순교당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는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하였다. 그들은 살벌한 박해 아래에서도 기독교는 여느 신비 종교들처럼 지하 세계로 움츠러들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들은 기독교 사상을 독특한 신학으로, 즉 기독교 복음을 합리적이고 지적으로 검토하고 옹호하는 신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변증가들 중에서 다음 세 사람은 기독교 신학 이야기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신론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고 또한 이레나이우스, 오리게네스 그리고 심지어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기독교 사상가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은 바로 순교자 유스티누스, 아테나고라스 그리고 테오필로스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중요한 2세기의 변증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적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독창적인 사상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으로 간주했던 그의 방법론 때문이다.
유스티누스의 저작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해설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로고스 개념으로 탐구하고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스티누스에게 이와 같은 사상-그리스와 히브리 사상에 뿌리를 둔-은 기독교 복음의 신비들을 여는 열쇠였다. 그에 의하면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한-두 번째의 하나님-선재했던 하나님의 영이다. 유스티누스는 불의 유비를 사용하여 로고스와 성령을 아버지 하나님과 연관시켜 설명한 기독교인들 가운데 첫 번째였던 것 같다. 그는 트리포에게 아버지부터 아들(로고스)의 발현은 전혀 아버지를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불에서부터 불이 붙은 것처럼, “불이 아무리 많은 불을 붙이더라도 그 불은 아무런 감소함이 없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유스티누스가 로고스와 성령을 삼위일체의 두 위격들로 분명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했지만-이 문제는 후대의 신학자들이 해야 할 과제였다.
유스티누스처럼 아테네의 사람 아테나고라스는 철학자이자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아테네를 방문하려던 시기에 황제에게 공개서한 형식으로 『기독교인들을 위한 탄원』(A Plea for the Christians)을 썼다. 유스티누스와 다른 변증가들처럼, 그는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지 말도록 권유하였다. 그의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가장 야비한 허위 고발과 소문들을 논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 이야기에 보다 적합한 부분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아테나고라스의 설명이다.
아테나고라스는 하나님을 주로 부정적인 속성으로 묘사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은 어떤 분이 아니시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나중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접근을 “부정의 신학”(apophatic theology)이라고 명명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아들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교도들에게는 자가당착으로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님이 아들을 낳았다면 하나님은 분명 어떤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과연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과연 어떤 존재의 형체를 입을 수 있는가? 이런 저런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당시 기독교인들은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테나고라스와 다른 변증가들이 저술 활동을 벌였다.
아테나고라스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대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신학적인 설명들 중의 하나를 발표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 그리고 그의 로고스인 아들과 성령은 본질적으로 연합된 것-성부, 성자, 성령으로-으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성자는 성부의 지성, 이성, 지혜이며, 성령은 마치 불에서 나오는 불빛처럼 하나의 발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사에서 볼 때 아마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가장 최초의 분명한 진술인 것 같다.
테오필로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n ex nihilo)개념을 제일 먼저 소개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 이야기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님이 우주 안에 영원하다고 하는 모든 물체와 씨름해야 한다고 하면 그런 하나님을 도대체 어떻게 완벽한 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체의 영원성은 하나님을 유한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만일 하나님이 진실로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다면, 우주는 분명 절대적인 무로부터 자유롭게 창조되었음에 틀림없다.
다른 변증가들처럼 테오필로스도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로고스 개념을 사용했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 때는 물론 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해서도 활동했다. 로고스는 영원히 하나님 안에 있고 성부로부터 존재의 형태로 발산된다.
삼위일체에 관한 테오필로스의 사고는 약간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과 하나님의 영 사이를 정확히 구별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를 단순하게 정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영원한 지혜이며, 성자는 그의 영원한 말씀(로고스)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목해 볼 점은 테오필로스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말씀, 로고스)을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것으로 설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중에 정통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창조에 앞서 로고스를 “발산했다”(emitted)고 하는 사상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말씀이 가변적인 존재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변증가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체의 중요한 기독교 신앙에 관한 신학적인 숙고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체계화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그들 중 대다수가 역사적인 예수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 6장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남긴 말썽 많은 유산
오리게네스의 생애와 경력
오리게네스는 185년 혹은 186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254년 혹은 255년에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리아에서 사망(순교)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교리문답 학교의 학생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클레멘트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저작 활동에서 오리게네스의 목적은 “이교도들의 지적인 물음들에 대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에 부응하여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교세가 대단한 영지주의 분파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저작 중 『원리론』은 기독교 철학의 체계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로고스와 창조,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주제들에 관하여 신학적 사고들을 유감없이 전개하고 있다.
신앙과 이성에 관한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가끔 신앙보다 이성과 철학을 앞세우는 이성주의자 혹 은 주지주의자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신학적인 문제에 관해서 그는 적어도 철학과 이성의 역할만큼 신적 계시와 신앙의 역할을 강조했다. 문제는 오리게네스가 철학적인 추론에 매우 심취해 버렸다는 점이고 이것이 때로는 공공연히 비성경적으로 보이는 결론으로 그를 몰고 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오리게네스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왜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그리고 그가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기록했는지를 이상하게 여겼다. 오리게네스는 신적 예정이나 선택(오리게네스는 자유의지를 강하게 믿었다.)의 관점에서 그 점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리스 사상인 영혼선재설에 호소하였다.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모든 영혼은 하나님께 순종과 불순종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닌 영혼의 선재적 상태에서 세상으로 들어왔다. 예수의 인성적 영혼은 이 같은 선재적 시련을 거치지 않고 무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지상의 인간 예수가 무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수가 무죄한 이유는 그가 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선재할 때에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서는 통탄스럽게도 유별나게 죄를 범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하면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순종했고 선하게 살았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오리게네스의 이 같은 추론의 과도한 측면은 아포카타스타시스(궁극적인 화해)에 대한 그의 지나친 희망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설명을 먼저 제시하고 성경을 전거로 삼아 자신의 사상을 변호한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고린도전서』 15:28에서 바울이 기록한 하나님은 “만유”(all in all)중에 계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탐구하고 설명한다. 오리게네스는 바울의 이 진술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든 창조물의 축복과 궁극적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오리게네스는 창조물 안에 죄에 대한 암시나 악의 현실, 혹은 유혹과 같은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그의 사상은 존재와 조화를 중시하는 그리스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종말론적 범신론(창조물과 하나님이 마침내 하나가 되어 버리는)으로까지 빠져들지는 않지만,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돌 때에 하나님과 모든 창조물은 하나로 연합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주장하였다.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
자신보다 이전 시대의 사람 필로처럼, 오리게네스는 성경의 세 가지 차원의 의미들을 구분했다. 성경 본문의 육체적 의미는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말한다. 성경 본문의 정신적인 의미는 그 본문의 도덕적인 의미를 말한다. 오리게네스는 많은 경우에 성경 이야기는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의 표면 아래 감추어져 있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원리를 제공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오리게네스에게 가장 중요한 성경 해석법은 영적 해석이었다. 영적 의미는 또한 신비적이며 거의 항상 신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과 기독교인의 관계를 의미한다. 영적-신비적인 의미는 비록 발견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항상 존재한다. 그 신비로운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바로 성경 주석가의 과제이다.
오리게네스의 알레고리적인 해석 목표들 가운데 하나는 이교도 지식인 켈수스와 같은 회의론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 가하는 참을 수 없는 압박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결코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거나 폄하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이방 지식인들이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으로 인해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방해물들을 알레고리적이고 비유적인 해석을 통해 제거하는 데 있었다.
오리게네스의 신론
오리게네스는 영원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했던 로고스의 절대적 신성에 관해 확고부동하게 주장했다. 다른 한편 그는 또한 종속주의의 함정-로고스를 성부보다 열등한 어떤 것으로 낮게 보는 경향-에 빠지곤 하였다. 성령은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에서 전적으로 무시되지는 않았지만 소홀히 여겨졌다. 오리게네스의 신론과 그것이 교회에게 유감스런 유산이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견해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영, 즉 단순하고(혼합되지 않은)형체가 없으며 불변하다. 하나님은 육체와 지체 또는 감정도 없는 “순수한 본질”이다. 물론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에 관하여 훨씬 많은 말을 했다. 그러나 중기플라톤주의가 그의 사상에 끼친 영향은 이 정도의 언급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리게네스의 로고스 개념
오리게네스에게 로고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의 형태로 오신 하나님 성육신 신앙을 이해가능하게 설명하는 데 핵심 열쇠이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흠 없는 거울”(완전한 형상)과 “파생물”(태양의 광선과 같은)로서 그의 말씀으로써 항상 성부와 함께, 그리고 성부 안에 계시는 분이다. 로고스는 영원히 발생되거나 혹은 하나님에 의해 영원히 출생되었다.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성부와 말씀 사이에는 하등의 차이점이 없다. 오리게네스는 로고스/말씀이 하나님 바로 그 아들이며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다른 한편, 오리게네스는 로고스의 개념을 설명하고 전개해 나가면서 그것의 가치를 발견했다. 즉 그는 로고스의 개념을 통해 세상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께서 성육신을 통해 시간과 역사에 어떻게 관계하시는지를 증명하려 했다. 로고스는 비록 영원하고 동등한 신이지만 아무래도 성부 하나님에게 종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에서 등급상의 차이를 주장한다.
오리게네스는 성육신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인성적 존재 전체를 망라해서-신적 로고스는 결코 실재적인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직 예수의 인성적인 육체와 영혼이 수난을 당하고 죽은 것이다. 오리게네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온전히 그리고 확고하게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 것은 신적 본질에 관한 그리스 사상에 주로 의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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